시간은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가장 자연스럽고 절대적인 개념으로 여겨집니다. 시계의 초침은 멈추지 않고 흐르며, 우리는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나아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대 이론 물리학의 최전선에서는 이와 같은 상식적인 시간 개념이 더 이상 절대적이지 않다는 도전적인 주장들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목할 만한 이론이 카를로 로벨리(Carlo Rovelli)의 루프 양자 중력 이론(LQG, Loop Quantum Gravity)입니다. 로벨리는 그의 저서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The Order of Time)』에서 시간은 우주의 본질적인 구성 요소가 아니라, 인간의 인지적 도구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오늘은 시간 개념이 배제된 우주 모델의 핵심을 살펴보고, 루프 양자 중력이 제시하는 시공간의 무(無) 개념, 그리고 시간이 없이도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를 중심으로 고찰하고자 합니다.
이러한 논의는 단순한 철학적 사고 실험에 그치지 않고,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한 실재적 탐구입니다. 시간이라는 개념이 실제로 우주의 근본 법칙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는지, 또는 그 역할이 환상에 불과한지를 검토함으로써 우리는 세계를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는 물리학뿐만 아니라 철학, 인지과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걸쳐 중요한 함의를 제공합니다.
시간의 해체: 카를로 로벨리의 '시간이 없는 물리학'
카를로 로벨리는 이탈리아 출신의 이론 물리학자로,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의 창시자 중 한 명입니다. 그는 시간이라는 개념이 뉴턴 고전역학과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에서 각각 어떻게 다르게 다루어졌는지를 분석하면서, 시간은 단순한 배경 구조가 아니라 상호작용과 관측을 통해 발생하는 현상이라고 주장합니다.
뉴턴 역학에서 시간은 절대적인 틀로, 모든 사건은 이 절대 시간 속에서 일어납니다. 반면,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에서는 시간은 공간과 결합된 시공간의 한 축이며, 질량과 에너지에 의해 구부러질 수 있는 유동적인 개념입니다. 로벨리는 이마저도 넘어서, 루프 양자 중력 이론에서 시간은 더 이상 독립된 실재가 아니며, 기본 물리 법칙에서는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가 등장하지 않는다고 주장합니다.
그에 따르면, 우리가 시간의 흐름이라고 느끼는 것은 사실상 무수한 상호작용들 사이의 관계에서 발생하는 환상입니다. 다시 말해, 시간은 객관적인 실체라기보다, 관측자의 주관적인 정보 구성 방식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양자 중력의 관점에서 시간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는 급진적인 통찰로 이어집니다. 로벨리는 이러한 관점을 통해 기존 물리학이 의존해온 시간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며, 우주의 진정한 본질에 다가서기 위해 새로운 사고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루프 양자 중력과 무(無)의 시공간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중력을 양자역학적으로 설명하려는 시도 중 하나로, 시공간 자체가 불연속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는 가정을 바탕으로 합니다. 전통적인 이론에서는 시공간이 연속적인 무대처럼 존재하며, 그 위에서 물질과 에너지가 움직입니다. 그러나 루프 양자 중력에서는 시공간 자체가 양자화되어 있으며, 더 이상 연속적인 배경이 아닙니다.
이 이론에 따르면, 시공간은 '스핀 네트워크(spin network)'라는 수학적 구조로 설명되며, 이는 아주 미세한 규모에서 공간이 불연속적인 단위로 구성되어 있음을 시사합니다. 시간 또한 이러한 불연속적인 변화의 관계 속에서만 정의될 수 있으며, 그 자체로 흐르거나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루프 양자 중력의 방정식에서는 시간 변수를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는 물리학 역사상 매우 이례적인 일로, 시간 없이도 모든 물리 법칙이 기술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루프 양자 중력은 시간 없이도 우주의 진화를 설명할 수 있는 강력한 후보 이론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블랙홀 내부, 빅뱅의 특이점과 같은 극한 상황에서 더욱 두드러지며, 고전 이론이 설명하지 못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이도 우주가 존재할 수 있는 이유
그렇다면 시간 없이도 우주가 존재할 수 있다는 주장은 어떻게 성립할 수 있을까요? 그 핵심은 '관계성'에 있습니다. 로벨리의 해석에 따르면, 모든 물리적 상태는 서로 간의 관계를 통해 정의됩니다. 이는 절대적인 시공간 배경이 아닌, 사건들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우주의 구조가 형성된다는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두 입자의 위치나 운동은 절대적인 시간 축 위에서 측정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간의 상호작용을 통해 기술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상대적인 정보들이 쌓이면서 우리는 '변화'를 인지하고, 이를 시간의 흐름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입니다. 실제로, 열역학 제2법칙에 따른 엔트로피 증가도 이러한 변화 인식의 한 예로 볼 수 있습니다. 로벨리는 이처럼 엔트로피의 방향성에 의해 시간의 방향성이 착각된다고 분석합니다.
또한, 인지 과학의 관점에서도 인간의 뇌는 정보를 처리하고 기억하는 과정에서 사건들의 순서를 만들어냅니다. 시간은 이러한 뇌의 작용에 의해 구성된 개념일 뿐, 우주의 본질적인 속성이 아닐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필연적으로 시간에 의존한 것처럼 보이지만, 이는 단지 인간의 인식 체계가 만든 구조일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철학적 전환을 요구합니다. 시간 없는 세계에서의 존재와 변화는 이제 단지 사건들 간의 상호작용과 정보의 배열로 설명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간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단순히 추상적인 철학적 사고 실험을 넘어서, 현대 이론 물리학이 제시하는 실제적 이론적 가능성입니다. 카를로 로벨리의 루프 양자 중력 이론은 시공간을 구성하는 가장 근본적인 층위에서 시간의 개념이 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패러다임은 우리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에 근본적인 전환을 요구합니다. 시간은 더 이상 우주의 필수적 구성 요소가 아니라, 우리의 인식 틀 안에서 구성된 개념일 수 있습니다.
결국, 시간 없는 우주란 우리에게 물리학과 철학, 심지어 인지 과학까지 넘나드는 거대한 사유의 지평을 열어 줍니다. 우리가 시간이라 부르는 흐름이 실제로는 수많은 관계성과 정보의 변화 속에서 발생하는 환영이라면, 우리는 지금보다 더 근본적인 차원에서 세계를 바라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통찰은 과학뿐 아니라 우리 존재의 의미와 인간성에 대한 질문에도 깊은 울림을 주며, 기존의 사고방식을 뛰어넘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합니다.